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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성을 기억하라, 성인처럼 살라, 5부 중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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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직 젊고‍ 아름다웠던 공주는‍ 다른 후궁들이나‍ 둘째 왕비 등과 함께‍ 왕이 화장될 때 같이‍ 화장될 예정이었죠. 모든 왕비와 후궁들이요. 일부 문화권에서는‍ 그들이 사후에도‍ 왕과 동행하며‍ 왕을 모시고 돌볼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또 다른 이론도‍ 있는 것 같아요. 오래 전 인도에서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남편이 죽거나‍ 왕이 죽거나‍ 중요한 인물이 죽으면‍ 아내나 후궁들, 왕비들은 함께‍ 화장돼야 했어요. 왜냐하면 왕이 죽을 때‍ 부인은 장작더미, 즉 왕의 사체를 태우는‍ 불 『앞에』‍ 선다고 경전에 나와 있거든요. 예를 들면요.

장작더미, 불‍ 『앞』이라고 했죠. 그런데 사람들은 몰라요. 누군가 고의로 혹은‍ 실수로 『앞』이란‍ 단어를 빼고‍ 불 『속』이라 한 것을요. 물론 부인이라면‍ 남편의 화장터‍ 앞에 서겠죠. 안 그래요? 당연하죠? 가장 가까운 가족이죠. 그런데 불 『앞』 대신에‍ 불 『속』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화장 되었죠, 어떻게‍ 그토록 잔인할까요?

그래서 아마 그 당시‍ 인도의 힌두교나‍ 어떤 사상의 영향을 받아‍ 당시의 참파 왕조는 그 전통을 따랐던 거라‍ 생각돼요. 그래서‍ 공주는 위험에 처했죠. 물론 당시‍ 어울락(베트남) 왕은‍ 호위 장군을 보내 늘‍ 공주를 보호하게 했는데‍, 공주가 이웃나라에‍ 혼인하러 갈 때도‍ 그가 동행을 했죠. 그래서 왕은 그를 보냈고‍ 그 외에도 다수의‍ 믿을 만한 호위병들을‍ 이웃나라로 파견해‍ 공주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어요. 그리고 그는 해냈죠.

어쨌든 그들은 성공했죠. 하지만 그 후에‍ 장군과 공주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그들은 정치로부터, 왕조로부터, 인간의 감정과 사랑을‍ 영토나 평화와‍ 맞바꾸는 거래로부터‍ 함께 도망쳤어요.

그들은 달아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이해가 되죠. 나라도‍ 그랬겠어요. 이번에는 장군도 공주를 또 다시‍ 왕궁으로 돌려보내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단 한번 그렇게 했는데‍ 심한 고통을 받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또 다시 그녀를 궁전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겠죠. 여러분은 이해할 겁니다. 아마 그녀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아버지가 딸을‍ 그렇게 줘버린다면‍ 딸이 또 다시 아버지를‍ 믿지는 못할 것 같아요. 평화를 위한 것이라 해도요. 그녀를 희생시키는 거죠.

하지만 그녀는 평생‍ 두려움을 안고 살겠죠. 마음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을 거예요. 전에도 말했고‍ 지금도 말하지만‍ 사람들은 육체적 관계를‍ 대가로 다른 많은 것을‍ 얻으려 합니다. 심지어‍ 신분 상승이나‍ 더 나은 상황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죠.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곳에서 그럴 거예요. 때로 영화 속에도‍ 그런 게 나오죠. 아마 현실에서도‍ 그럴 겁니다.

말했듯이 이처럼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 이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상상할 수 있나요? 그러니 어찌 육신을 지닌‍ 보통 인간인 우리가‍ 깨달음의 힘을 동반한‍ 이 강력한 창조의 힘을‍ 감당하겠어요? 이 세상은 이 힘 때문에도‍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때로 이 세상의 인구가‍ 필요 이상으로, 우리의 경제력 수준‍ 이상으로 많은 것은‍ 이 힘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걸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너무 많으니까‍ 다시 읽어줄게요. 『너무 강력하여 생명을‍ 창조하기까지 한다』‍ 이 힘 덕분에‍ 동물들도‍ 생명체를 창조해요. 하지만 동물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더 영리해요. 그들은 짝짓는 시기에만‍ 육체적 접촉을 하고‍ 다시는 서로‍ 관계를 갖지 않아요. 우리 인간만 예외죠. 시기와 상관없이 계속하죠. 우리가 그런 시기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동물들은 짝짓는‍ 시기에만 해요. 그런 뒤엔‍ 서로 돌봐주고‍ 자식들을 돌보죠. 하지만 인간은 늘 합니다.

그 힘은 한 생명이나‍ 동시에 여러 생명을 만들죠. 어떤 이는 쌍둥이나 심지어‍ 네다섯 쌍둥이를 가지죠. 여러분도 알고 있죠. 이 힘이 아주 강력하므로‍ 인간이 이 힘에‍ 굴복한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거예요. 다만 이 힘이‍ 깨달음의 법문으로서는‍ 곤란한 점이 많다는 거죠. 『깨달음의 수행을 위해‍ 그걸 다루거나, 길들이거나, 쓰기가 무척 어렵고‍ 감당해야 할 부작용의‍ 위험이 너무 크기에‍ 참된 수행자들은 거의‍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부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출가승들에게‍ 여자를 쳐다보지도‍ 말라고 조언했던 거예요. 심지어 70세 노파가‍ 병들어 누워있다 해도요. 그렇죠? 내 말이 맞나요? 내 기억력이‍ 안 좋을까 봐서요. 나이가 들어서요. 맞나요? (맞습니다)‍ 아, 좋아요. 기억이 맞다니 다행이에요.

얼마 전에도, 지난번에도 말했었죠. 맞죠, 선생님? 맞죠, 노스님? 맞죠? 부처는 그렇게 말했죠. 네‍. 재가자 여러분은 이 부분을‍ 안 읽었을 테지만‍ 비구와 비구니들은‍ 다 알아요.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난 이걸‍ 20대에 읽어서‍ 잊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벌써‍ 4, 50년이 흘렀는데‍ 기억하면 괜찮은 거죠. 내가 잘못 말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입증하려고‍ 물어본 거예요. 그 힘을 감당하는 게 매우‍ 어렵단 걸 부처는 알았죠. 그래서 승려들은‍ 1미터 앞만 바라봅니다. 다른 건 안 보고‍ 앞에 있는 곤충만 보고‍ 살생을 피하거나 했어요. 다른 건 이미 말했어요.

『부처는‍ 이 법문을 성공할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부처가 되어야만 그걸‍ 아는 건 아니죠, 그렇죠? 부처는 알았죠. 하지만‍ 모든 이가 알거라 생각해요. 부처가 되어야만‍ 다음과 같이 이것의‍ 문제를 아는 건 아니죠. 『거의 모든 이들이‍ 이 법문에 실패할 것이다. 이 나약하고 취약한‍ 육신 안에 놓인 이 힘은‍ 너무 강력해서 다루기‍ 어렵고, 특히나‍ 우리의 신성한 자성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성에 대해‍ 알지조차 못하는데‍ 이런 강력한 창조력을‍ 부여 받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거예요. 더러는 호르몬이라 부르죠. 하지만 이 힘은‍ 본래 우리 안에 있는‍ 깨달음의 힘을 여는데‍ 쓰여야 합니다. 과학적으로는‍ 호르몬이라 불리죠. 『우리의 신성한 근원과‍ 신성한 지혜에 대한‍ 모든 지식을 빼앗아간다』‍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 우린 영적인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로‍ 태어나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해요. 성경에도‍ 똑같이 나와 있어요. 『봐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뜻이죠. 우린‍ 영적 귀머거리, 장님이죠. 외면만을 볼 뿐‍ 우리의 진아와 내면의‍ 진정한 세계를 못 봅니다. 우린 그걸 다 빼앗겼어요.

『홀로 마야의‍ 부정적인 힘이 쌓아놓은‍ 온갖 장애와 문제들에‍ 맞서야 한다』‍ 내적으론 이 강력한 힘을‍ 통제할 수 없고‍ 외적으로는‍ 온갖 장애와 유혹, 문제들이 이미 너무‍ 많아 감당하기 힘들죠. 그러니 진실로 자성의‍ 보호력 안으로 들어가‍ 숨지 않으면 우린 정말‍ 파멸이죠. 세세생생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똑같은 일이나‍ 비슷한 일을 반복할 뿐‍ 절대 해탈할 수 없어요.

만일 이 세상에‍ 축복과 자비의 힘으로‍ 우리를 돕는 부처와‍ 성인, 깨달은 이가 없다면‍ 우린 영원토록‍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이나 동물로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참 다행이죠. 단지 우리가‍ 너무 심한 압박을 받아서‍ 잘못을 범하고 그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까 걱정이죠.

능엄경을 명심하세요. 성심으로 수행하려는‍ 수행자도‍ 일단 뭔가, 약간의 힘과‍ 약간의 지식을 얻으면‍ 다른 걸 원하기 시작해요. 부처나 예언자 무함마드 (그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예수와 같은‍ 깨달은 참 스승들이‍ 살아 있을 때‍ 인도받는 게 아니니까요. 그들은 도울 수 있지만‍ 대개는 살아있는 스승을‍ 찾도록 우릴 밀어붙이죠. 그들은 어떻게든 도와요.

입문만 빼곤 도울 수 있죠. 입문은‍ 어떤 물질적 입구를 통해서 (through the portal of a physical opening) 되어져야 하는데‍ 그건 육신을 가진‍ 살아있는 스승만이‍ 할 수 있어요. 또한 구도자에게 주는‍ 스승의 축복을 통해서요. 축복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은총을 나누는 것이죠. 안 그러면 우린‍ 정말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스승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그 모든 스승이 내면으로‍ 우릴 도울 수 있어요. 우리가 기도하면 모두가‍ 도와요. 깨달음의 지혜를‍ 전수한 그 스승도‍ 내적으로 우릴 돕겠지만‍ 다른 많은 스승들도‍ 늘 옆에서‍ 우리를 돕습니다. 그들에게 기대고‍ 그들에게 기도하세요. 그들을 잊지 말고‍ 늘 도와달라고 기도하세요. 도움을 받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그런 도움이 없다면‍ 우린 언제든 익사할‍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적국인 이 물질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적의 나라예요. 진짜 우리 나라가 아니죠. 우리의 진정한 나라는‍ 열반에 있고 천국에 있죠.

그러니 여기 있으려면‍ 깨달음과 자아 인식에‍ 있어 아직 어린 단계에‍ 있는 우리보다 더 강력한‍ 모든 무형의 존재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린 걷는 법을 배우고 있죠. 아직 뛸 수도, 날 수도‍ 없으니 내면 스승의 힘, 육신을 가진‍ 내면 스승의 힘에 의지하고‍ 과거와 미래의 스승들께‍ 늘 의지해야 합니다.

『참된 보호가 부족하면‍ 대부분의 존재들은‍ 내면의 이 강력한 힘에‍ 굴복하고 만다』‍ 창조력을 말해요. 『이것은‍ 더 고귀한 목적을 위해, 깨달음과 해탈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쓰지 못해요. 사실 우리에겐‍ 보호력이 없어서‍ 아주 어렵습니다. 보호력이 부족하면‍ 우린…‍ 안되죠, 수행할‍ 생각조차 못할 겁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이 방법을 알지도‍ 못합니다. 가령 깨달음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이 힘을‍ 그들은 모를 뿐만 아니라‍ 보호력도 없습니다. 대개가 그렇죠. 충분히 강하지 않죠. 그래서 안됐다는 거예요. 참 안됐어요. 거의 사용되지도 않고‍ 성공하는 경우도 드물죠. 하지만 신은 선하셔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많은 법문을 주셨어요.

선택할 법문은 많지만‍ 관음법문이 최고입니다. 모든 부처들이 그렇게‍ 말했어요. 관음보살도‍ 그렇게 말했고‍ 문수보살도‍ 그렇게 말했어요. 예수도 그걸 가르쳤어요. 예언자 무함마드(그에게‍ 평화가 있길)도 가르쳤고요. 그래서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여러분이 관음하는‍ 모습과 거의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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