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궁극적인 공급자시니 우린 감사해야 합니다. 누가 휴지를 주면 여러분은 『감사합니다!』라고 하죠. 누가 물 한 잔을 줘도 『감사합니다!』라고 하고요. 신께선 모든 것을 주시니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네) 그분께 감사하세요. 그게 일반적인 거죠. 최소한의 예의예요. 좋은 매너를 갖추는 건 우리에게 좋습니다. 신께도 예의를 갖춰야 해요. 신이 그렇게 하길 요구해서가 아니죠. 감사하는 건 늘 좋은 거죠. 더 많이 감사할수록 그분은 더 많이 주시니까요. 항상 그래요.
이건 에세네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거예요. 기본 생활방식이죠. 『그들은 몸을 씻고, 교파에 입회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는 특별한 홀로 들어간다』 아! (명상홀이군요) 명상홀이죠! 아무도 못 온다는 게 아니라 보통은 외부인들을 들여보내지 않는다는 거죠. 뭐 하러 그러겠어요? 여기서 우리가 입문자만 허용하는 것과 같죠. 다른 행사에는 외부인을 환영하지만 선행사를 하거나 명상할 때는 아니죠. 그들은 명상하는 법을 모르니 그냥 거기 앉아 다른 이들을 쌍안경으로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요. 『저 남자는 어째서 이렇게 명상할까? 저 여자는 어째서 저렇게 명상할까?』 그럼 여러분은 불편해서 잠을 잘 못 자겠죠? 그래서 아무도 여기 못 오게 하는 거죠. 앉아서 자는 법문에 입문하지 않은 사람은요. 걸어 다니면서 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린 앉아서 잠을 자죠. 글쎄요, 별 차이가 없죠. 상관없어요. 적어도 앉아서 졸면 넘어지진 않을 테죠. (네) 걸어 다니면서 자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앉아서 졸면 그냥 앉아서 졸뿐이죠. 누구에게도 해를 주진 않잖아요? 그렇죠? 아주 평화로운 단체죠.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가 불평 소리가 아니라 코 고는 소리니까요. 해로울 건 없는 상황이죠. 평화를 이룬 거죠, 맞죠? 적어도 여러분끼리는요.
자… 『율법에서 정한 정결의식을 행한 후에 그들은 마치 거룩한 신전에 들어가듯 경건한 마음과 정결한 상태로 식당에 들어간다. 모든 이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형제단 내에서 빵 굽는 이들이 들어와 일정한 순서대로 빵을 나눠 준다』 연장자에게 먼저 주고 뚱뚱한 사람에겐 마른 사람 보다 빵 하나를 덜 주겠죠. 또 뭐가 있을까요? 여기서 난 자유로이 먹게 해요, 여러분은 맘껏 먹죠. 뚱뚱한 사람은 많이 먹고 마른 사람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어서 계속 적게 먹죠. 그건 아니죠, 여러분은 적당히 먹고 있죠? 다들 충분하죠? (네) 하루 두 끼 괜찮나요? (네) 한데 두 끼가 아닌 것 같더군요, 부엌을 들락날락하며 빵이나 사과 같은 걸 집어먹는 걸 봤어요. 그건 괜찮아요.
내 말은, 부엌에서만 종일 있어선 안 된단 거죠. 하루 두 끼만 해도 많아요.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에게 너무 잘해주는 거예요. 온갖 맛있는 음식을 해주죠. 미리 집에서 수고스럽게 해가지고 오죠. 그래서 여기선 그냥 그걸 데우거나 차갑게 먹죠. 그렇게만 해도 맛있죠. 이것들은 어울락(베트남) 별미예요. 음식점에서도 먹기 어려운 거죠. 가정 요리죠, 가령 어제 본 둥근 비건 파테는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요. 부드러운 콩, 어린 콩 페이스트를 아주 곱게 으깬 다음 바나나 잎으로 잘 묶어 그처럼 부드러워질 때까지 오랫동안 익혀야 해요. 그걸 실크파테라고 하지만 실크는 들어있지 않아요. 완전채식, 비건이에요.
전에 난 채식이란 단어만 알았어요. 비건이란 단어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내가 말하는 건 다 채식인데 사실은 비건이죠. 정확히 구분하자면요. 우리가 저기서 먹는 모든 것은 기준상 완전한 비건이에요. 비건이 아닌 게 없어요. 알겠어요? 동물 주민에게서 나온 건 전혀 없고 모두 사랑으로 만든 거예요. 여러분은 참 운이 좋아요. 행운아들이죠. 집에서 나도 못 먹는 거죠. 그럴 기회가 거의 없죠. 대만(포모사) 같은 데서 누가 가져오거나 비행기에 몰래 들고 왔을 때만 먹어보는 거예요. 가령 어울락(베트남) 비건 실크파테처럼요. 비단처럼 부드러워서 실크파테라 불려요. 실크파테요. 만드는 데 오래 걸려요. 그렇게 부드럽고 조밀하게 만들려면 기술이 좋아야 해요, 기술이 좋지 않으면 으깬 감자처럼 풀어져 버리거든요. 그처럼 조밀하고 맛있지 않죠. 양념도 정확한 양을 넣어야 해요. 그러니 어제 요리한 사람은 정말 잘 하는 사람이에요. 나도 못 먹는 거예요. 나도 집에서 그런 건 못 먹어요.
집에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나뿐이죠. 그런데 요즘엔 요리할 시간조차 없어요. 그래서 그냥 간단히 먹죠. 이미 말했듯이 현미와 참깨, 녹두를 먹어요. 과일도 먹고요. 과일, 디저트 같은 걸 먹어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생야채가 있으면 먹고 아니면 삶은 야채나 그냥 간단한 혼합 샐러드를 먹죠. 야채와 과일은 그걸로 충분해요. 그리고 단백질은 녹두와 쌀에서 섭취하고 현미에는 비타민B군이 많아요. 참깨에는 단백질과 미네랄이 들어 있고요. 알겠어요? (네) 내가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내 거처에 와서 스승이 요리한 음식을 먹는 건 꿈도 꾸지 마세요. 난 내 음식도 안 해요. 때로는 현미와 참깨도 먹지 못해요. 너무 바빠서 아주 늦게 먹죠. 이를테면 5, 6시쯤 저녁이 다 돼서야 먹죠. 비건 샌드위치를 준비할 시간이 난다면 그냥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게 다죠. 그런 다음 일을 계속해요. 그 후엔 시간이 없죠. 그러고 나면 명상 시간이고 그냥 명상하러 가죠. 아주 늦은 밤이거나 새벽이 되기도 해요.
내가 단순하게 살라는 건 그게 편리해서이기도 해요.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여러분도 살 수 있죠. 비건 요리법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때문에 정작 우린 자신은 요리할 시간도 별로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어쨌든 이 세상 누군가는 즐기는 거니까요. 우리가 아니면 어때요? 가령 비건 실크파테를 만들어서 가져온 자매처럼요, 본인은 얼마나 먹었겠어요? 아마 하나도 못 먹었겠죠. 여기 굶주린 사람이 많으니 다 챙겨왔을 거예요. 몽땅 여러분을 위해 가져왔겠죠, 알겠어요? 그게 우리가 찾을 수 없고 살 수 없는 사랑인 거죠. 물론 여러분은 보답으로 그녀에게 돈을 주죠. 적어도 재료 구입비를 충당하도록요, 거기에 추가로 약간 더 주죠. 모금한 돈과는 별도로, 여기 음식을 가져오면 우린 돈을 지불해야 해요. 음식이 안 좋으면 환불해달라고 하세요! 엉망인 음식을 씹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음식도 낭비했죠. 요리를 못해서요. 그러니 우린 괜찮은 음식에만 돈을 줄 거예요. 형편없는 음식은 환불을 받을 거예요.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요.
자, 『요리사는 각자 앞에 야채와 다른 음식을 한 접시씩 놓아준다. 그런 뒤에는 제사장 한 명이 나와서 기도를 드린다. 그들은 기도 전에 먹거나 음식에 손대는 것을 중대한 죄로 여긴다』 내가 전에 말한 내용이죠. 먹기 전에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세요. (네)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지만 마음으론 기도해야 해요. 그것도 괜찮죠. 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기도하세요.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아요. 멋진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습관이 없다면 그냥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돼요. 기도하고 신께 감사하는 건 신이 원해서가 아니죠. 베풀어준 이를 기억하는 건 여러분 자신에게 좋죠.
연두부를 만든 그 자매와는 별개로 신은 궁극적인 공급자시니 신께 감사해야 해요. 누가 티슈 한 장을 줘도 『감사합니다!』라고 하죠. 누가 물 한 잔을 줘도 『감사합니다!』라고 하고요. 신께선 모든 것을 주시니 그분께 감사해야 해요. (네) 그분께 감사하세요. 그게 당연한 거예요. 최소한의 예의죠. 예의가 바른 건 우리 자신에게 좋죠. 신께도 예의를 갖춰야 해요. 신께서 그걸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더 많이 감사할수록 신께서 더 많이 베푸시니 늘 감사하는 게 좋아요. 항상 그래요. 계속 커지는 사업이죠. 여러분이 잘하면 잘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되는 거죠. 물론 누군가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하면 여러분은 기분이 좋고 그가 좋은 사람임을 알아 나중에 그가 필요로 할 때 그를 다시 도울 겁니다. 반면에 누가 여러분을 무시하고 음식만 받아 멀리 달아나선 다른 곳에서 먹고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여러분은 약간 마음이 상하거나 실망감을 느껴 나중엔 기꺼이 베풀고 싶지 않을 거예요. 혹은 도움을 줬단 이유로 여러분이 감옥에 갇힌다면 다시 도움을 주기가 꺼려지겠죠, 그렇죠?
자, 『그들은 기도 전에 먹거나 음식에 손대는 걸 중대한 죄로 여긴다. 식사가 끝나면 제사장은 또 다른 기도문을 읽고 찬송가를 부른다』 그들은 의식을 중시하네요. 우리도 그럴 수 있지만 여기 이웃들은 우리가 큰 소리 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수백 명이 노래한다고 해봐요, 맙소사! 우린 교회도 아니잖아요. 공식적인 종교가 아니죠. 크게 노래 부르면 안 되죠. 우린 내면으로 부릅시다. 마음속으로 감사와 행복과 평화의 영원한 노래를 불러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식사 전후에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신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를 올린다』 이게 올바른 방법이에요. 물론 시간이 없을 때는 마음속으로 감사하면 됩니다. 노래하고 그럴 필요 없죠. 신은 음악을 좋아하시지만 여러분의 목소리가 이웃들이 들어줄 만큼 좋은지는 모르겠군요. 특히 여기서 수백 명이 노래를 부른다면 그들이 경찰에 우릴 신고할 거예요. 그러니 속으로만 해요. 식사 전후로요. 신을 찬양하고 싶으면 어떤 찬양이든 올리세요. 맛있는 음식과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해요. 적어도 음식을 주신 신께 식사 전후로 감사하고 신을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요. 그냥 『신, 신, 신』 『아버지 하느님』 이렇게만 부르지 말고 『사랑하는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등 창의력을 발휘하세요!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신을 불러보세요. 그럼 기분이 좋을 거예요. 왜냐하면 말은 물질 언어라도 아주 특별한 효과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