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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사는 비폭력의 방식: 모든 인간은 형제자매다 - 마하트마 간디(채식인), 2부 중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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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한다스 카람치와 간디로 태어났고 위대한 영혼으로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모범적인 영적 수행자이자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1869년에 태어난 인류의 이 열정적인 봉사자는 처음에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동포의 삶을 개선하려는 열망을 발견하면서 내면에서 다른 소명을 느꼈습니다.‍ 사랑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때로는 정부의 바람직한 변화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폭력과 유익한 결과를 장려하기 위해 명상과 단식을 했지요. 그래서 온 나라에서 평화로운 변화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저서 『모든 사람은 형제다』에서 지구의 영적 가족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자신의 삶과 내적 깨달음을 겸허하게 성찰합니다. 한 구절에서 그는 종교와 관계없이 믿음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신성한 원칙이라 묘사했죠. 『믿음은 우리가 폭풍의 바다를 헤쳐나가게 하며, 믿음은 산을 움직이며, 믿음은 대양을 가로지르게 합니다. 그 믿음은 바로 살아있는, 완전히 깨어있는 내면의 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 믿음을 얻은 사람은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몸이 병들어도 영적으로 건강하며,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유합니다』‍ 이제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 『모든 인간은 형제자매다』에서 지혜로운 사상을 소개하겠습니다.‍

4장: 아힘사, 비폭력의 길

비폭력은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재주가 고안한 가장 강력한 파괴 무기보다 더 강합니다. 파괴는 인간의 법칙이 아닙니다. 인간은 필요하다면 형제의 손에 죽을 각오로 자유롭게 살며, 절대 형제를 죽이지 않죠. 어떤 이유이든 다른 사람에게 가한 모든 살인이나 상처는 반인륜적 범죄입니다.‍ 비폭력의 첫 조건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정의로운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 본성에 그걸 기대하기엔 과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누구도 인간 본성의 타락과 진보 능력을 맘대로 정할 수는 없어요. 폭력 훈련에서 살생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비폭력 훈련에서는 죽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폭력은 두려움에서 해방이 아니라 두려움의 원인과 싸우는 수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비폭력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폭력 숭배자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고의 희생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땅과 재산, 생명을 잃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이는 아힘사를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아힘사 숭배자는 오직 신만을 두려워합니다. 신에게 귀의한 자는 육신을 초월하는 아트마(본질)를 엿보아야 하며, 불멸의 아트마를 엿본 순간에 무상한 육신에 대한 애정을 없앨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폭력 훈련은 폭력 훈련과 완전히 상반됩니다. 폭력은 외부의 것을 보호하는 데 필요하지만, 비폭력은 아트마를 보호하고 명예를 보호하는 데 필요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우리가 사랑한다면 그건 비폭력이 아닙니다.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할 때 비폭력입니다. 사랑의 위대한 법칙을 따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훌륭하고 좋은 일은 모두 어렵지 않나요?‍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일은 가장 어렵지만, 신의 은총을 통해 우리가 원한다면 가장 어려운 일조차 성취하기 쉬워집니다. 나는 파괴의 가운데서 생명이 지속함을 발견했고, 따라서 파괴의 법칙보다 더 상위의 법칙이 존재해야 합니다. 오직 그 법칙 아래에서 질서정연한 사회를 이해하고, 삶은 가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법칙이라면 일상에서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불화가 있을 때마다, 상대와 대립할 때마다 그를 사랑으로 정복하세요. 나는 이 허술한 방식으로 그것을 삶에서 실천했지요.‍ 그것이 나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이 사랑의 법칙이 파괴의 법칙은 결코 주지 못했던 답을 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령 나는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서 나의 감정을 제어하는 데 성공합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내 안에는 언제나 비폭력 법칙을 따르려는 끊임없는 의식적인 투쟁이 있습니다. 그러한 투쟁은 비폭력을 더 강화합니다. 이 법칙을 더 실천할수록 내 삶과 우주 계획에서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나에게 평화를 주고, 내가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의미를 알려줍니다.‍ 나는 개인과 같이 국가도 다른 방법이 아닌 오직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기쁨은 남에게 고통을 주는 데서 오지 않고 스스로 짊어진 고통에서 옵니다.‍ 만약 역사가 기록된 이래 우리 시대까지 살펴본다면, 인류가 아힘사를 향해 꾸준히 나아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먼 조상은 식인종이었습니다. 그러다 식인 풍습이 싫어진 시기가 도래했고, 그들은 사냥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이 사냥하며 유랑하는 삶을 부끄러워하게 된 시기가 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농사를 지으며 양식을 얻기 위해 어머니 지구에 의존하였습니다.‍ 따라서 유목 생활에서 문명화된 정착 생활로 바꾸고 마을과 성을 세우고 가족의 구성원에서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힘사로 나아가면서 힘사(손상 또는 해악)를 줄였다는 표시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 멸종했을 것입니다. 많은 하위 종들이 사라진 것처럼요.‍

선지자와 신의 화신은 대부분이 아힘사의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힘사(손상 또는 해악)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요? 힘사를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동물로는 폭력적이지만 영으로는 비폭력입니다. 인간이 내면의 영을 일깨우는 순간 폭력적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힘사로 나아가거나 파멸로 달려갑니다. 그래서 선지자와 신의 화신들이 아힘사의 모든 속성인 진리, 조화, 형제애, 정의 등의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주장합니다. 비록 사회 구조가 비폭력의 의식적 수용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 세계에 인류가 살고, 인간은 서로의 용인 아래 재산을 유지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다면 오직 가장 소수의, 가장 잔인한 사람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가족은 사랑의 유대로 서로 결속되고, 소위 문명화된 사회의 집단인 국가도 그렇습니다.‍ 단지 비폭력 법칙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방대한 가능성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순순한 타성에서 완전한 비폭력은 오직 무소유를 맹세하고 금욕하는 소수에게만 가능하다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비폭력 숭배자만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고, 인간을 지배하는 위대한 불변의 법칙의 가능성을 때때로 선언한 것이 사실이지만, 법칙은 모두에게 이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실패는 법칙의 실패가 아닌 추종자의 실패입니다. 많은 추종자는 자신이 싫든 좋든 법칙 아래에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죽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법칙을 따른 것이며, 나는 지난 50년간 이 법칙의 의식적인 수용과 그 실패에 직면하더라도 이 법칙을 열심히 지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50년간 노력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고, 나의 믿음은 강해졌지요. 나는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적법한 소유가 보편적이고 자발적인 존경을 받을 때 그런 상태가 될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소유는 분명히 더럽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어디나 존재하는 불평등의 불쾌한 사례가 아닐 겁니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소유 문제로 비폭력 숭배자를 놀라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비폭력 저항운동과 폭력의 완전한 대체물로 밝혀진 비협조라는 비폭력 무기의 사용권을 가지고, 그것을 언제나 충분하게 사용합니다. 나는 비폭력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런 취급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어떤 자연 과학도 하지 못했고 정확한 수학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구도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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